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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번째 이야기

신윤주 | 2025-02-06 | 조회 992

설 직전 회의 차 서울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날씨도 따뜻하고, 또 걷는 걸 좋아해서 명동성당까지 걷게 되었어요. 항상 명동성당에 가면 대성전에 들어가서 잠깐 기도하고, 성모동산을 거쳐 성물방을 한번 둘러봤어서 이번에도 역시 같은 루트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이번에는 우연히 지하 쪽으로 가게 되었어요. 빨리 끝난 회의 덕에 여유롭게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된 것이었는데, 평소에 자주 들렀던 빵집이나 커피가게가 아니라 조금은 생소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더 오래 전부터, 그 빵집이나 커피가게들보다 먼저 그 장소에 있었을 수도 있는, 그렇지만 제 눈에는 처음 들어온 그곳은 바로 장기기증 신청을 받는 곳이었어요. 저는 평소에 장기기증에 대해 '꼭 해야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냥 장기기증하는 분들의 기사를 보면서, 훌륭하신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 분들의 사연을 읽고 마음 아파하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번에 장기기증 신청하는 곳을 지날 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신청을 하려니 소심해져서, 그 앞을 조금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도움이 되려나, 대단하지도 않으면서 대단한 척 하는 건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신청서라도 써보자라는 생각으로요. 신청서를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너무 별 것이 없어서, '신청이 된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얼마가 지나 집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증이 온 것을 보고, 신청이 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지금도 사실 그렇게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마음보다는 사실, 누군가를 통해 내 일부가 나보다 좀 더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하고 나니,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그 언젠가에 제 장기의 일부를 받으실 그 분들을 가끔은 생각하게 되었고, 그 분들에게 다시 삶이 허락되었을 때, 제가 할 수 없었던, 그리고 하지 못했던 유익한 일들을 하시기를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제가 그분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로 인해 제가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책상 위에는 장기기증센터에서 주셨던 기념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게 하소서'라는 이 기념품 위의 글귀처럼까지는 아니지만, 결국 우연을 가장한 주님이 이끌어주신 길을 따라 걸어서 이번 신청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를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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